퇴계선생 언행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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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8-26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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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신년(1660) 7월에 공사를…(To be continued )
성재 금란수의 「도산서당영건기사」*□ 정사년(1557)에 선생께서 도산 남쪽에 서당터를 잡으시고, 느낌을 적은 ... , 퇴계선생 언행록기타레포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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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사년(1557)에 선생께서 도산 남쪽에 서당터를 잡으시고, 느낌을 적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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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재 금란수의 「도산서당영건기사」*
설명
다. 나[란수]에게 주신 글에, 「도산의 일은 중이 일을 맡아 기와를 입히는 등 곧 마칠 듯 싶으나 어찌 법련과 같은 굳센 성심으로 담당할 수 있으리요?」하였다. 또 조사경(목)에게 준 편지에 「도산정사의 터를 잡은 것은 만년에 가장 큰 관심사로서 법련이 스스로 담당하여 내가 돌아가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일을 마쳤으면 하였더니, 이제 들으니 법련이 죽었다니 이런 몹쓸 일이 있을 줄이야……」하였다.
□ 법련이 죽고 난 뒤 정일이란 중이 계속 일을 맡아 영건하였다. 그리하여 중 법련에게 그 일을 맡아보라고 청하였는데, 준공이 되기 전 무오년(1558) 7월에 선생께서 나라의 부름을 받아 서울로 가시면서 집의 청사진[옥사도자]한 부를 벽오 이장[이문량의 호. 자는 대성. 농암의 아들]에게 주면서 법련에게 시키는 대로 일을 마무리하게 하였다.순서
성재 금란수의 「도산서당영건기사」*
□ 정사년(1557)에 선생께서 도산 남쪽에 서당터를 잡으시고, 느낌을 적은 시 두 수를 지으셨다. 그 뒤 다시 도산 남동으로 가서 5언고시를 짓고 마침내 서당을 이곳으로 옮기시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