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11테러 1년,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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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2-11-02 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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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꼬마는 비닐로 싼 물건(한국의 쑥떡과 비슷한 것)을 내밀었다. 콧물이 누렇게 말라붙은 …(skip)
카불 서북쪽 카리가리에 유엔난민담당관실(...
네살 난 꼬마도 생계위해 마약 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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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9·11테러 1년] 아프간 난민들 비참한 생활 네살 난 꼬마도 생계위해 마약 팔아 카불 서북쪽 카리가리에 유엔난민담당관실(... , 9 11테러 1년, 그 이후인문사회레포트 ,
다. 카불 도로를 달리다 멈춰서면 열린 창문 속으로 아이들의 손 수십개가 ꡐ미스터ꡑ ꡐ서(sir)ꡑ라는 영어와 함께 들어온다. ꡐ볼러드ꡑ라는 코에 대고 맡는 마약(麻藥)이라는 것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소년 가족의 일상은 정해져 있다아 아침부터 자기 먹을 것을 마련하기 위해 흩어지는 것이다. 유엔은 난민들에게 미화 20달러, 쌀 50㎏을 주며 ꡐ아이들을 학교로 보내라ꡑ고 권고한다.설명
1. [9·11테러 1년] 아프간 난민들 비참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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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11테러 1년, 그 이후





1. [9·11테러 1년] 아프간 난민들 비참한 생활
네살 난 꼬마도 생계위해 마약 팔아
카불 서북쪽 카리가리에 유엔난민담당관실(UNHCR)이 설치한 ꡐ디스트리뷰션 센터(distribution center)ꡑ는 파키스탄으로 몸을 피했던 난민들이 반드시 들르는 곳이다. 한 개를 집어보려 하자 파키스탄인 아킬(27)이 막았다. 때로 달리는 차에 40~50m씩 매달려 끝내 ꡐ은전(恩典)ꡑ을 쟁취하는 맹렬파도 있다아 여인들도 체면을 가리지 않는다. 울퉁불퉁한 도로를 지나다 보면 쓰레기더미를 뒤지는 어린이들이 자주 눈에 띈다.
난민들은 받은 돈을 다 쓰면 거리로 나선다.
국외로 나간 200여만명(추정)뿐 아니라 아프간 국민 전체가 사실 난민이다. 카불~바그란 행 도로 양쪽 주택은 90% 이상이 파괴됐다. 맨얼굴로 차량에 돌진하는가 하면, 갑자기 부르카 속에서 이방인의 코 앞에 손을 쑥 내밀어 놀라게 만든다.
파키스탄 수도 이슬라마바드에서 160㎞ 떨어진 국경 도시 페르샤와. 지난달 28일 기자가 아프간 난민촌에 들어서자 네 살 난 모하메드 이슬람 꼬마가 다가왔다.
모하메드의 가족은 모두 12명. 아프간 북부 도시 잘랄라바드에서 작년 12월, 전쟁을 피해 이곳에 왔다. 지금도 하루 average(평균) 1000~3000여명이 몰려온다.